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장석주의 <대추 한 알>중에서
대추 한 알이 읽어가는 과정이 한 그림속에 그려진다. 자연의 변화에 맞서 이겨내면그 결실이 대추가 된다. 그래서 이 시를 보면 한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내 생일이 대추 한 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어렸을 때가 있었을까? 벌써 수많은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었다. 지나간 속도에 순간 아찔하다. 그래, 나도 시간에 익어갔다.
스스로 끓여 먹는 미역국은 어떤 맛일까? 생일이 되기 한참 전에 어머니가 국거리용 양지머리를 집에 놓고 가셨다. 막상 귀찮다! 양지머리를 냉동실에 넣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미리 미역국을 끓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고기를 푹 삶으면서 기름을 걷어내는 과정을 마치면 살코기를 얇게 뜯어낸다. 그 후 물에 담가놓았던 미역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은 후 간을 맞춰간다. 이렇게 푹 끓이면 맛있는 미역국이 완성된다.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는 게 좀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역국 끓이는 걸 망설였나 보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국을 뜨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축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위로하고 있는 걸까?’ 혼자 먹는 생일 미역국은 축하의 의미보다 위로의 성격이 더 강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묵묵히 떠먹는 국은 나 자신이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나이를 또 먹었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이 맛이 익숙해질 것이다. 어쩌면 나만의 깊은 맛이 배어들지도 모른다. 지금은 서툴지만, 나 자신을 위해 정성껏 미역국을 끓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나도 이 맛에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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