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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 정호승, <꽃을 보려면> 중에서
3월이 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오늘의 싸늘한 바람은 나를 놀라게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역대 규모의 큰 산불로 인해 서민들의 마음까지 위축되는 요즘이다. 이 바람이 산불진화에 얼마나 큰 어려움을 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기도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이 쌀쌀한 공기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갈 것이다.
길가에 봉우리가 올라오거나 살짝 눈웃음 짓고 있는 개나리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치열한 겨울을 보낸 후 선물같이 봄꽃이 찾아왔다. 그냥 찾아온 선물이 아니라 숙제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드디어 받을 수 있는 꽃다발이다.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는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인생을 통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또다시 느껴지는 봄의 이야기처럼 꽃씨는 시간과 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애순과 관식이의 사랑과 인내가 다음 세대를 위한 꽃씨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끔 한 인생드라마였다.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내가 꽃씨를 받을 만한 품이 있어야 한다. 오로지 나만 알고 내인생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조차 구할 수 없다.
답이 뭘까?
그냥 사는 것이다. 모든 자연이 있는 그대로 주어진대로 사는 것처럼 순응하면서 살기 위해 내 상태도 자연 그대로의 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을 버리지 않았던 칼"은 내게 있어 어떤 것이 있을까? 드라마 속 금명이처럼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했던 나의 순간들이다. 이제는 그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을 뒤로 하고 싶다. 지금 와서 그럴 것을 원망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꽃씨같은 자식들을 위해 애순이와 관식이같이 시행착오를 하시면서 나이가 드셨다.
이제는 봄을 맞을 만한 체온으로 올라왔다. 너른 품은 아니더라도 어머니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지독하게 버리지 않았던 칼을 던질 용기도 갖게 되었다. 마음을 열었으니 이번 봄에는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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